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몬 드 보부아르 (문단 편집) === 실비안 아가생스키의 비판 === 철학자 실비안 아가생스키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페미니즘과는 거리를 두면서 "여자는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가능성 중 하나를 거절함으로써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라고 주장한다.[* 브누아 페터스 『데리다, 해체의 철학자』 변광배, 김중현 옮김, 그린비, 2019, p.690] >사람들은 흔히 어머니로서의 여자가 남자에게 이용되어 도구로 간주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후손에 대한 관심은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잊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도구성'은 필연적으로 상호적이다. 그렇기에 누가 다른 성(性, sexe[* [[성별|성]]을 뜻하는 프랑스어])을 이용하고, 누가 다른 성을 수단으로 삼았는지를 아는 문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피임과 생식의 기술로 여자들이 자신의 생식력을 억제할 수 있는 지금 확인되고 있다. 여전히 무례한 니체는 『즐거운 지식』에서, 여자에게 "남자는 한 수단에 불과하다. 목적은 항상 아이이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러한 도발적인 주장은 사실이 되어 가고 있다. 여자들은 자신이 어떤 아버지의 아이를 어느 때 가질지를 최종적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Sylviane Agacinski, ''Politique des sexes'', Seuil, 2001, p.83] >---- >실비안 아가생스키 『성의 정치 (politique des sexes)』 즉, 보부아르는 남성이 '모성'을 수단으로 여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모성애'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논리를 그대로 여성에게 적용시켜본다면 여성 자신도 (그것이 순수한 의도이건 아니건 간에) '아기의 존재'를 가지고 남성을 '수단으로써' 사용하고 있음을 실비안 아가생스키는 지적한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이용한다는 것'은 성별 간에 있어서 상호적인 것인 것이다. 따라서 임신이 그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우리는 '모성'의 문제를 한쪽의 '수단'으로써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히려 하나의 가능성, 아기를 낳고 기르기로 선택하는 것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실비안 아가생스키는 주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